은사 중에 으뜸되는 사랑통독과 교회의 덕
은사 중에 으뜸 되는 사람 통독
당시에 은사 문제로 분쟁이 많았던 고린도 교회를 향해 바울은 모든 은사가 사랑이 없으면 무익하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큰 능력을 가지고 믿음을 자랑하여도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또한 사랑의 특성에 대하여 바울은 상세히 설명합니다. 사랑의 핵심은 내가 아닌 타인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내로써 믿음과 소망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일시적인 것들이지만 믿음과 소망과 사랑만이 영원하며 그중에서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바울 사도는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출발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큰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도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의 대강령은 결국 수직적인 관계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수평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성도라면 점진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강조한 바와 같이 사랑이 없는 지식만으로는 영혼을 살릴 수 없으며 사랑만이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은사들을 가지고 서로 판단하고 갈등한다면 은사를 주신 성령님께서 슬퍼하실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교만을 가져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달란트와 은사를 서로 존중하며 모든 지체가 한마음으로 교회의 유익과 다른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 가운데 용납하고 화합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다.
고린도 교인들은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었습니다. 여러 은사 중에 외적으로 신비스럽게 보이는 방언을 최고의 은사로 여기고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교회의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또 다른 은사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방언과 마찬가지로 언어를 사용하는 은사인 예언과 방언을 비교하여 방언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교회 전체에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은사를 사모하도록 권면합니다. 교회는 개인주의적인 신비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 영적 진리를 선포해야 하는 근본적 사명을 지닌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로 하여금 성도 되게 하는 것은 은사에 있지 않고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특별한 은사라도 갖게 되면 그것이 성도 됨의 증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 불법을 행하는 자로 규정당하고 내쳐지는 이들은 어떤 이라 했습니까? 놀랍게도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한 이들입니다. 아무리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성도라도 그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으면 이미 그의 구원은 확정된 것입니다. 사랑보다 위대한 은사는 없습니다. 사랑은 최고, 최상, 제일의 은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자답게 꾸준히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토대가 되고 밑거름이 되어 은혜를 받고 진정한 성도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마치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된 것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에 관한 한 전문가적인 소양과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지식과 영적인 안목을 통해 오늘 이 시대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고 옳고 그름을 판별해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죄를 책망하고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교회에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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